[이미지 트래플] 나주 원도심 - 고샅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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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나무 그리고 금성관의 단청까지. 나주의 첫인상은 날씨만큼 푸르렀다. 처음 방문한 이곳을 어디서부터 돌아볼까 고민하다가 발길 닿는 대로 나주의 구도심을 걸어 보기로 했다. 전라남도 나주를 방문하면 먼저 곰탕골목에서 따끈한 곰탕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운 뒤 그 앞에 있는 나주목문화관에 들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무작정 찾아온 여행객이 구도심을 둘러보기 전에 나주의 역사와 볼거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문화관에서 얻은 지도를 참고해 여행 경로를 대충 정하고는 나주목문화관과 금성관 사잇길을 걸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장독대나 도시에서 보기 힘든 돌담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이 모든 것이 정겹게 다가온다.


지도에 있는 ‘이로당’이란 곳을 찾았지만 간판을 찾을 수 없었다. 목을 축이러 들어간 카페에서 바로 옆 건물인 노인회관에 소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로당의 ‘로’가 한자 ‘늙을 노(老)’이지 싶었다. 이로당은 현재 노인회관 겸 무더위 쉼터로 쓰이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의 육방(六房) 이속(吏屬) 가운데 우두머리 격인 호장(戶長)과 호방(戶房)이 근무하던 건물로 광복 후 나주국악원으로 잠시 이용되기도 했다. 용이 몸을 뒤틀며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용나무라고도 불리는 400년 된 해송이 이로당의 마당에 그늘을 드리운다. 어르신들이 방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문득 4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얘기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로당에서 나와 향교길을 걸으며 서성문으로 향했다. 영금문으로도 불리는 서성문은 2011년 복원한 나주읍성의 서쪽 성문이다. 1894년 음력 7월 1일 동학농민군의 공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며,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정봉준과 당시 나주목사였던 민종렬이 협상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서성문 옆에 있는 터는 복원 공사 중이어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다. 공사 현장 맞은편으로 고불고불 이어지는 흙담 길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담을 따라 나주 남쪽으로 걸었다. 길 오른쪽으로 강줄기가 흐르고 왼쪽에는 한옥 몇 채가 있었다. 나주 도심과는 다른 한적한 풍경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강을 따라 금성교 하단에 있는 남파고택으로 향했다.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상류층 가옥인 이곳은 조선시대 후기에 남파 박재규가 건립해 나주 밀양박씨 일가가 200년간 대를 이어 거주하는 곳이다. 지금은 박경중 종가의 삼대가 살고 있다. 열린 대문 사이로 초가집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잘 보존된 초가집을 언제 볼 수 있었던가. 초당채 앞쪽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사전에 연락하고 방문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어 아쉬웠다. 넓은 대청마루부터 시렁 위에 가지런히 정돈된 목기까지 종가의 전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초당채 등 모두 여덟 동이 남아 있다.


나주읍성 남고문을 지나 드디어 옛 나주역에 도착했다. 한 세기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현장을 마주하니 신선했다. 나주역의 왼편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기능을 다한 옛 역사는 철거되었지만 옛 나주역은 학생항일운동의 진원지였던 가치를 인정받아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함께 보존되고 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1929년 11월 3일 발발한 항일투쟁운동이다. 그해 10월 30일 나주역에서 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여학생을 희롱한 남학생과 충돌한 한국인 남학생은 바로 앞서 방문한 남파고택의 건립자 남파 박재규의 후손 박준채이다.


가끔 나는 나에게 묻는다.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저들의 동지가 되어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외칠 수 있었을까. 역사를 알면 알수록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고된 길이었는지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독립운동에 힘쓰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표한다.

처음에는 그저 나주역사의 외관이 마음에 들었고, 배경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앞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을 보자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이렇게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주는 이 여름날의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곳으로 마음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