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13] 책내음 가득한 가을 / 열화당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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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의 시초인 강릉 선교장의 이야기는

 월간한옥 23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책을 옆에 두고 싶어지는 계절,  

월간한옥 레터에서는 가을을 맞이하여 독자여러분께 

책내음 가득한 '열화당의 인터뷰'를 준비하였습니다. 

출판사 열화당 이수정실장님의 인터뷰와 함께 가을을 맞이해봅시다.





ㆍ열화당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어떠신가요?  


이수정 실장님: 놀라움과 부끄러움, 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듯합니다. 어느새 오십 년이나 되었구나 놀랍다가도 그 동안 무얼 했나 쑥스럽기도 하달까요. 그만큼 세월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겠죠. 여러 사정상 특별한 행사는 못하고 오십 주년 기념  『열화당 도서목록 1971-2021』 을 만들었어요. 반세기 동안 만든 900여 종의 책 표지를 연도순으로 배열하고, 분야별 책들과 전시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타블로이드판 종이 목록을 출판 관계자, 저역자, 독자 들과 나누었는데, 의외로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그러니까 책으로만 만나 온 일반 독자 분들의 응원과 축하 메시지가 제일 많아 놀랐어요. 열화당을 조용히 지켜보고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구나 싶어 마음이 따뜻하고 뭉클했습니다.



ㆍ열화당이 생각하는 은 책의 기준과 책을 기획 시  역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수정 실장님: 오십 년이나 했어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여전히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아요.(웃음) 물론 출판을 결정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긴 합니다. 주제나 내용 면에서는 기존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분야인지, 혹시 중복 출판이나 꼭 내지 않아도 되는 책인지를 우선적으로 봅니다. 전자라면 조금 부족한 원고라도 최대한 끌어올려 내 놓으려 하고, 후자라면 내지 않는 쪽이 좋겠지요. 서술의 형식은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사진 작업이라도 예술사진보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을 두는데, 그것이 ‘책’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이야기가 된다는 이유도 큽니다. 책의 세계는 전시장과는 다른 차원이니까요. 저자의 성향은, 좁은 시야의 전문가보다는 세계와 인간을 폭넓게 바라보고 이야기할 줄 아는 교양인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열화당의 책을 좋아하시는 독자라면 대략 어떤 저자들인지 눈치채셨을 거예요. 


ㆍ열화당 50주년을 나타낼 수 있는 책을 소개해 주세요. (10년 단위로 한 권씩 부탁드립니다.)  


이수정 실장님: 열화당은 흔히 ‘미술’ 전문 출판사로 불리곤 하는데, 이는 초창기인 1970-1980년대에 국내에 부족했던 미술 책들을 집중적으로 내던 때의 이미지가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분류해 보면 미술 책이 아닌 것들이 더 많고, ‘예술’로 넓혀 부른다 해도 역사, 전통문화, 문학 등 그 경계가 애매한 책들이 적지 않죠. 이번에 도서목록을 만들면서 재확인했지만, 특정 주제로 한정하기보다는 ‘책’이라는 그릇에 담았을 때 매력적으로 구현되는 원고라면 유연하게 수용해 왔어요. 열화당의 대표 도서로 손꼽히곤 하는 책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해 보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1977, 현재 절판), 김수남의 ‘한국의 굿’ 시리즈(1983-1993),  강운구의 『경주남산』(1987), ‘근원 김용준 전집’(2001-2007), ‘우현 고유섭 전집’(2007-2013), 2004년부터 현재까지 25종이 나온 존 버거의 책 등이네요. 


이처럼 미술사, 샤머니즘, 다큐멘터리 사진, 불교조각, 한국전통예술, 한국근대문학, 한국미술사, 시각문화연구, 소설, 에세이 등 그 주제나 장르가 다양합니다. 작가 중심의 전집이나 하나의 주제를 두고 오래 작업한 긴 호흡의 프로젝트들이 많은 것도 열화당의 특징입니다.



ㆍ지금 발행 예정인 책 중 기대가 되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수정 실장님: 아무래도 전 14권으로 기획된 ‘상허 이태준 전집’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은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달밤」 「복덕방」 같은 단편소설, 수필집 『무서록(無序錄)』,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로 유명하죠. 월북 작가라서 1988년 해금 직후 지금까지 몇 차례 전집과 단행본이 나왔지만, 대부분 절판되거나 주요 작품만을 골라 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정본(定本)이라고 하기에는 오류가 적지 않았고요. 열화당은 근원 전집과 우현 전집을 발간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모든 작품을 망라한 전집을 진행하고 있어요. 생소한 어휘와 내용은 풀이를 달아 지금의 세대가 읽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관련 시각 자료나 책 만듦새에도 공을 들여 열화당만의 색깔이 들어간 소장본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예정이에요. 그밖에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문화비평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1889-1966), 미국의 사진가이자 사진이론가인 앨런 세쿨라(Allan Sekula, 1951-2013)의 사진에 관한 주요 글을 엮은 선집이 각각 출간 예정인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요한 저작들이라서 나름 기대가 큽니다.


ㆍ열화당이 그리는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수정 실장님: 기술발전뿐만 아니라, 팬데믹, 기후위기 같은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이 요즘처럼 불확실하고 어려운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책’과 ‘출판’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 역시 종종 자문하곤 하지만, 이젠 자본주의적 성장모델이 기업의 바람직한 대안이 되지 못하는 시대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꼭 필요한 책을 천천히 지속적으로 내는 것, 이는 세상의 다른 책들과의 균형과 조화를 고려해야만 가능하며, 열화당이 기본적으로 견지하고자 하는 생태주의적 태도입니다. 비교적 이러한 방향성을 잘 지켜 왔지만, 한편 불균형한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 분야 저작물에서 여성 작가들의 비율이 의외로 너무 적은데, 열화당도 좀 더 이를 의식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오거나 앞으로 나올 책들 중 여성들의 좋은 저작들이 있어 조금씩 개선의 노력을 하고 있어요. 덧붙여, 열화당은 책 만드는 일 못지않게 책의 역사를 배우고 함께 나누는 일 역시 중요시하는 만큼, ‘열화당책박물관’을 잘 꾸려나가는 것도 중대하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런 방향성들이 ‘생태’ ‘균형’ ‘배움’ 등의 개념으로 귀결되는데, 지난 시간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가치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판권이 어떠하네, 누가 편집인이네 하며 여러 부속이 많지만 그 시절엔 ‘어느해, 어느 계절에 나왔다’ 정도로 기록하고 책을냈어요. 그 당시 무슨 출판사가 있었겠냐 하지만부속에 사로 잡히지 않고 핵심을 보면 시간을 거슬러 작은 역사도 알 수 있어요.”


출판사 <열화당> 이기웅 대표의 기다림과 책임감으로 지은 '책농사' 인터뷰는

 월간한옥 18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