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10] 기다림과 책임감으로 지은 '책농사'

조회수 1952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많은 이들이 미술 전문 출판사는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 했다. 이기웅 대표는 1971년 출판사 <열화당>을 열어 전통문화와 예술분야의 서적을 만들어왔다. ‘미술문고’와 ‘미술선서’를 펴면서 미술 전문 출판사의 토대를 다졌고, 이후 ‘한국의 굿’, ‘한국의 고궁’, ‘한국 기층문화의 탐구’, ‘한국의 탈놀이’, ‘교양한국문화사’, ‘한국문화예술총서’ 등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미술과 전통예술에 대한 가치인식이 높지 않고, 관련 분야의 전문 책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던 때부터 우리의 예술을 꾸준하게 다뤄 출판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데도 큰 몫을 했다.


“출판이라고 하는 것은 농사와 같습니다. 5년에 한번 풍년이 드는 농사가 있어요. 

그만큼 기다려야 하고, 이겨낼 수 있는 자 만이 책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출판이라고 하는 것은 농사와 같습니다. 5년에 한번 풍년이 드는 농사가 있어요. 그만큼 기다려야 하고, 이겨낼 수 있는 자 만이 책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선택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내 인생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책 농사야 말로 이런 선택에 지침을 주는 위대한 힘을 담아야 합니다.” 담백한 말 속에서 그에게도 풍작을 이루기까지 여러 고난과 역경이 있었음을 헤아린다.


파주 출판도시는 이러한 말이 주는 가치와 책의 가치를 이어 좋은 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책을 농사짓는 도시’, ‘책의 농장’을 정체성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출판도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균형을 이루며 성장의 동력이 된 곳이다. 출판도시의 개념은 건축가 승효상과 영국 건축가 프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이 만들었다. 이들은 출판단지를 계획하며 선교장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한옥 이야기를 하고, 한식을 함께 즐기며 도시 자체를 한국적 풍토에 맞도록 구성하였다. 서구적인 분위기로 연출이 되었지만 사이니지 하나에서도 한국의 정서를 내포할 수 있도록 만들려 노력했다. 열화당의 사옥은 모델하우스 개념으로 시범 건축한 건물이다. 선교장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옥의 지붕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을 최대한 살리고 기존 경관을 부각시킬 수 있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건축가와 설계자들이 노력한 결과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혼 도서관을 짓는 게 내가 짓는 매듭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곳이고, 그 기록을 통해 기억을 만드는 곳이에요. 가장 중요한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기록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기록하고 이를 책을 통해 보존하고자 합니다.”


파주출판도시를 이끌어 온 이기웅 대표는 ‘영혼 도서관’을 추진하고 있다. ‘영혼 도서관’은 그의 생에 대한 따뜻한 관점과 그가 평생 해온 기록이라는 업이 만나는 지점이다. 기억의 창고가 풍부한 사람들을 만날 때 즐겁다는 그는 그 기억을 함께 나눌 사람들과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월간한옥> N.18 : 아아라히 - 기다림과 책임감으로 지은 '책농사' 

<월간한옥> N.18 기다림과 책임감으로 지은 '책농사' 내용 일부를 발췌·재구성하였습니다. 

글 안유선 / 사진 강민정


월간한옥 18호에서 열화당 이기웅 대표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월간한옥 18호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