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공간] 신축한옥, 시간이 흠뻑 스민 한옥의 모던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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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한옥 2 북촌 애가헌(愛家軒) 
시간이 흠뻑 스민 한옥의 모던한 공간

-박경철


북촌로12길 정점에서 남산타워를 향해 보이는 한옥 지붕의 물결은 사람이 살지 않는 궁궐의 스산함과 달리 따듯하게 모여 있는 한옥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의 모습으로 형성된 근대기 집과는 많이 변해 집집마다 공이 많이 들어간 모양새다. 물론 동네의 부동산값은 주변의 시세와 다른 고점의 지역인 만큼 집집의 소유주나 형태가 그 색깔을 다양한 전통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으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벽의 높이만큼 다른 세상의 삶을 엿보는 모습 같지만 평범한 집들도 있고 서울시의 공공 한옥들과 개인 전시관도 있어 잠시나마 신세기의 궁궐을 산책하는 마음이 드는 곳이다.


북촌 동사무소에서 출발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하는 마지막 모퉁이에 단아하고 많은 공을 들인 한옥 한 채가 위치한다. 오른쪽은 익숙한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담장을 만들었으며, 왼쪽은 새롭게 길게 뻗은 장대석으로 석축을 쌓아 두 담 축을 사이에 두고 작은 대문을 만들었다. 본래는 왼쪽 대로에 대문이 있었는데 집을 새롭게 단장하며 변형했다고 한다.



꽤나 공들인 집인데 의외로 작은 대문으로 집 입구를 만들어 단출한 규모의 집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느 집들과 같이 기와지붕밖에 보이지 않는 집이지만 그 작은 대문의 입구가 있는 곳에서 그것이 착각이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입구 한옥 문의 너비는 7자(2.1m) 남짓이지만 나무 기둥의 심방목(수직 나무 기둥을 수평으로 받치는 나무)을 받치는 장대석이 나무 모양에 맞게 그렝이질(모양에 맞춰 자르는 기법)을 해서 받치고 있다. 즉, 나무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대리석을 조각해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 집의 공이 쉬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작은 대문을 통해 발 디딘 애가헌(愛家軒)은 7자 정도 올라야 그 마당에 진입할 수 있는데 대문을 열면 눈에 보이는 집 마당과 바닥은 검정 방전과 전돌 그리고 장대석으로 바닥을 설치한 모습이다. 조선의 화려함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싶은 모습으로 창덕궁 후원 앞 낙선재의 모습만큼이나 공들여 지었음이 느껴진다.


대문을 들어서면 들어오는 눈높이의 시선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안양루 밑에서 그 창궐한 신세계가 수직으로 눈에 펼쳐지듯 보이는 신이의 세계라 한다면, 이곳은 작은 대문을 수평으로 펼치며 들어서 그 시선에서 건물의 바닥을 마주하게 한다.



시간의 흔적이 흠뻑 배어 있는 장대석이 건물과 기단을 감싸고 마당의 경계를 나누고 있으며 그 안에 검정 방전으로 기단의 상면을 이뤘다. 특히 입구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건물의 마루 밑은 검정 전돌로 마무리함으로써 집을 이루는 기초의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인다. 집을 들어서서 한숨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뜨면 이 집을 구성하는 기초의 모든 것이 투영되어 집의 모습을 가늠하게 한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된 집의 모습은 안채와 별채의 지붕과 건물의 격을 볼 때 새롭게 만들면서 많은 것이 변한 듯 보인다. 전망 좋은 별채의 격을 높여 화려하게 시공함으로써 안채보다 한층 더 격이 높은 위치 변화의 느낌이 도시 한옥의 안배가 수평 배치의 전통가옥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안채와 별채 두 건물 사이의 작은 마당은 옆집의 한층 높이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벽면을 굴뚝과 와편담으로 장식해 밀집된 집과의 충돌을 지붕처럼 얽힌 기와로 풀어냈다. 좁은 마당에서 옆집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만드는 건물의 모양새가 어울림으로 현명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감탄을 부른다.



와편으로 장식된 담의 문양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무덤덤하지도 않게 기와의 물결처럼 장식했다. 굴뚝으로 솟은 와편의 상부에 작은 기와를 만들고 그 위에 기와집 굴뚝 입구를 만들어 냄으로써 집의 처마와 옆집의 기와 그리고 그 윗집의 지붕들이 기와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인다. 경사지고 집집이 밀집한 동네 특성상 담장과 담장 지붕과 처마 등의 얽힘이 여차하면 시각의 부조화뿐만 아니라 구조적 상충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마당 입구의 안채 정면과 별채의 옆쪽에는 작은 난간이 만들어져 있으나 사용하는 용도 보다는 의장적 요소가 크게 만들어진 듯하다. 그 작은 난간을 눈여겨보면 아주 정성스럽게 조각된 거북들이 난간의 돌란대(손잡이)를 등으로 받치고 있다. 조각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쉽게 만든 것이 아님을 알 때 양쪽 건물의 난간이 화려한 조각품임을 깨달을 수 있다.



안채는 맞배지붕의 납도리에 겹처마 지붕으로 만들어졌고 동으로 만든 물받이를 덧대서 지붕이 마당 깊이 뻗어 있다. 특히 담장 넘어 지붕을 내기가 불가능했던 탓인지 대문에서 바라보면 박공의 길이가 다르다. 이것은 서까래의 좌우 길이가 다르다는 뜻으로 마당 쪽의 서까래를 더 길게 만들어 지붕을 활용한 특징을 보인다.


대문 입구의 오른쪽에 자리한 별채는 건물 구성상 사랑채처럼 만들어졌으며 정자의 위치처럼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해 집 밖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은 공간에 팔작지붕과 홑처마로 구성했지만, 물받이를 이용해 겹처마처럼 느낄 수 있고 팔작지붕의 구성이 마치 정자를 짓듯 만들어진 특징이 있다. 특히 가구 구조를 살피면 동자주나 화반을 구성해 상부 높이를 구성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휘어진 대들보를 활용해 부재를 명료하게 사용했다. 좁은 공간의 천장 높이를 굴도리 구성과 함께 높여 만들어 답답한 공간감이 전혀 없다.



조선시대 양반집의 사랑채와 안채 등에 굴도리를 사용한 경우가 많은데 보통 사랑채는 굴도리집, 안채는 납도리집으로 만든다. 이것은 음양오행설에서 “하늘(남성)은 둥글고 땅(여성)은 네모다”라고 한 남성우위사상이 반영된 것인데 근래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 같다.


다시 대문으로 돌아가, 두 채의 집을 만나기 위해 오른쪽 계단으로 올랐다면 왼쪽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공간이 나타나는데 상부의 두 채집을 올린 하부의 지하 공간을 현대적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집 일부가 나타난다. 지하 입구에는 화장실이 외부에 만들어져 있으며 입구를 통해 들어갔을 때 사무 공간과 커다란 부엌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 통으로 만들어져 있다. 어쩌면 실생활에서 활용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말하려 할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보이는 공간의 변신은 작은 면적의 한옥을 수직적인 배치로 현명하게 만들어 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현대식으로 만들어진 주방 공간은 널찍한 주방가구와 식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층 한옥의 굴뚝과 연결된 주방의 후드는 과거의 용도에 맞춰 현대식 가구를 활용한 적절한 방식이다. 주방을 마주하고 있는 다목적 공간을 지나 입구 쪽 맞은편에 있는 사무 공간은 실재 애가헌을 운영하는 실무자들의 공간이다. 애가헌은 다양한 전시를 비롯해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구성한 사랑채 같은 공간이다. 집으로 삶을 영위하기에도 충분하지만, 공공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하에서 다시 올라와 마당을 거닐며 잠깐의 담소를 나누고 청명하게 펼쳐진 하늘과 이웃집의 기와지붕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잠시나마 일상과는 다른 세상을 방문한 듯하다. 마당을 지나 다시 대문을 향한 후 집을 나서려니 애가헌 세 곳에 둥근 달이 집을 밝히고 있었다. 차경을 보던 사랑채의 창호 옆 달항아리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모퉁이에 달항아리 그리고 지하에서 사무 공간을 나누던 유리 벽 사이의 커튼에 달항아리 그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