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한옥 레터 #39] 두 세계를 잇는 방식, 종교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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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남교당 ⓒ월간한옥 / 김기용


ㆍ관념적 공간, 종교 건축물  


<월간한옥 34호>에서는 율곡로와 대학로 사이에 들어선 원불교의 새로운 교당인 원남교당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원남교당은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사람들이 오가는 일곱 개의 골목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도시적인 요소에 둘러싸여 있지만 골목을 따라 교당에 다다르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판타지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종교 건축물은 거주와 보호의 관점으로 지어지는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다르게 종교의 가르침과 교리가 담긴 관념적 공간에 가깝습니다. 유형의 건축물에 무형의 것들을 담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종교건축에서는 자연적인 요소를 가장 유용한 재료로 사용하곤 합니다. 물에 떠 있는 것 같은 제주의 방주교회나 여름이 될 무렵 라벤더로 가득 차는 삿포로 부처의 언덕처럼 말이죠. 


원불교 원남교당 ⓒ월간한옥 / 김기용


그리고 자연의 다양한 재료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빛'입니다.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는 더욱 그렇죠. 더 많은 양의 빛을 독특한 형태로 건물의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게 만들고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더 다채로운 신앙의 메세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바라시키의 빛의 교회나 독일 메헤르리니의 브라더 클라우스처럼 말이죠.


그렇게 종교 건축물은 장엄한 구조와 공간, 압도하는 자연의 재료들로 일반 건축물과는 다른 고유한 체험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동시에 원남교당처럼 우리 생활 주변에 존재하는, 실제로 사람이 머물고 사용되는 생활공간으로 시대와 상황에 맞게 지어져 당대의 사회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약현성당 ⓒ월간한옥 / 김철성


ㆍ십자군 전쟁부터 종교인 과세까지  


종교로 발발한 십자군 전쟁을 포함하여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전쟁의 현장에는 사제, 무당, 승려 등이 늘 함께였으며 여전히 신앙을 이유로 세계 어딘가에서는 긴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뿐만 아니라 천문, 기상학 등은 과학으로 자리 잡기 이전에는 천명의 종교였다고 할 수 있으며, 한때는 국가의 통치 이념이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국교'라는 이름으로 일부 종교를 국가에서 '공인'하기도 하며 별도의 세금 제도를 갖는 등 개인의 믿음 이상의 규모와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개신교, 가톨릭, 불교, 원불교가 4대 종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만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려부터 한반도에서 역사가 길었던 불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억불숭유 정책으로 한때 탄압받기도 했지만 깊게 뿌리내린 종교였던 만큼 왕실과 민간에서 꾸준히 종교적 역할을 하며 존재해왔으며 현재까지도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문화적 특징과 문화유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문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만큼, 불교의 종교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찰 또한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 있는데요. 사찰은 여전히 전통 한옥의 양식을 많이 차용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건축양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고 합니다. 불교 사찰은 한반도에서 그 역사가 오래되어 점차 고정된 건축 양식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전쟁이 줄고, 화재 등으로 인한 소실이 적어지면서 한옥 형태의 사찰이 많이 남아 이제는 명소로 자리 잡기도 했죠.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월간한옥 / 강민정


ㆍ한옥과 성당  


19세기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서구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하여 종교와 함께 건축물도 서구의 건축 양식에 맞춰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초기에는 서구의 양식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문화와 혼재해 있던 모습도 있었는데요.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1894년 조선시대 크리스마스에는 연등으로 불을 밝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요 국가 종교였던 불교의 종교 행사인 석가탄신일과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합쳐진 것이죠. 마찬가지로 서구식 건축양식이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옥으로 지어진 천주교 건축물도 존재했는데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내부 ⓒ월간한옥 / 강민정


"강화성당은 개화기인 1900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1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도들이 모여 예배를 보는 공간이다. 전통한옥의 구조를 가진 강화성당은 외부는 한국 사찰의 배치 방식을 따르고 있고 내부는 서양의 기독교 건축양식의 구조를 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독특한 건물이다.


대지는 구원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배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뱃머리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정문(외삼문, 내삼문) 그리고 성전이 있으며 성전 뒤로 사제관이 위치하는데 이는 한국의 사찰 구조의 배치를 따른 것으로, 묘지를 통해 성전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가진 서양의 기독교식 배치가 낯선 한국인들을 배려한 것이다."


-월간한옥 29호, 창호를 통해 본 전통건축 중에서-


대흥사 ⓒ월간한옥 / 김철성


ㆍ도시와 불교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 서구식 건축 양식으로 높게 세워진 건물로 도시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더 좁은 지역에 밀집해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의 형태 또한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사찰 건축은 가람배치라는 정형화된 공간 배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그 전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데요. 이 역시도 시대별로 변화가 있었으며 형태의 가감이 존재하나 기본적으로는 탑과 불전을 중심으로 하며 사방으로 문을 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한 전체적인 배치는 동서축방향으로 두기도 하지만 원칙은 남북 방향을 중심 축선으로 합니다.


동서 혹은 남북을 축으로 하여 횡으로, 대지에 수평으로 펼쳐지는 배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넓은 면적이 필요합니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현실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인구가 밀집된 도심에서의 포교 활동을 위해 기존의 횡적 배치를 종적으로 바꿔 도심에 세운 불광사 불광법회가 송파구 석촌호수 옆에 생겨나게 됩니다. 불광사 불광법회는 건축가 류춘수가 설계하였으며, 2013년 완공된 지하 4층, 지상 5층으로 총 9층 규모의 사찰입니다. 지상의 경우 4층까지는 현대 건축물이며 5층에는 목조 양식의 대웅전이 세워져 있죠.


불광사 불광법회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건과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현대 도심 사찰의 한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원불교 원남교당 ⓒ월간한옥 / 김기용


ㆍ'의도적 단절'과 '적극적 연결'  


원불교 원남교당은 어떨까요. 원불교는 기존의 사찰들이 산속에 들어가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였고, 때문에 원불교 교당은 도심과 주택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정해진 건축 양식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당대의 건축 양식을 차용하고 있어 원불교의 건축양식은 타 종교에 비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죠. 예로 원불교 중앙총부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대로 지어져 근대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습니다.


원남교당은 가장 최근에 지어진 원불교의 교당으로 원불교의 교리와 관념을 따라 지난 교당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도심에 지어졌으며 형태 또한 현재의 건축 양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전통 목조 한옥과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로 하나의 교당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재료와 양을 섞는 방법도, 콘크리트 건물에 한옥을 올리는 방법도 아닌 개별 건물로 지어 어울리게 놓아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원남교당에서 바라본 풍경, 원불교 원남교당 ⓒ월간한옥 / 김기용

 

건축 설계를 맡은 조민석 건축가는 원남교당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주안점을 뒀다고 합니다. 첫째는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도시적 연결과 단절시켜 영적 환경을 조성하는 '의도적 단절'이며 둘째는 창경궁, 대학로 등 주변 공간과 머물고 있는 이웃과의 '적극적 연결'로 "교당과 일곱 개의 골목을 연결하고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며 소통하는 일이 곧 원불교의 생활종교적인 측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의도적 단절'과 '적극적 연결'은 교당과 주변, 교당 내의 두 개의 건물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재 문명과 문화가 나아가야 할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연결하며 확장할 것들과 단절하여 지켜가야 할 것들 말이죠.


다음 뉴스레터는 설 연휴가 지나고 발송됩니다. 모두 설 연휴 잘 보내시기 바라며 변화하는 명절의 모습 속에서도 지키며 발전할 것과 이제는 조금씩 줄여가야 할 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