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시가 서울한옥 4.0 재창조 계획을 밝혔습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서울한옥 3.0'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물론 한옥 정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짐작하여 알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서울시의 한옥 관련 정책은 그 시작을 포함하여 네 번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확히 '4.0'이라는 버전을 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서울한옥 4.0은 "최근 다양한 현대한옥, 한옥을 재해석한 현대건축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 이용자의 편의, 취향 등이 반영된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한옥·한옥 디자인에 대한 접근 및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이번 정책의 배경과 방향성을 밝혔습니다.
한류를 비롯해 한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 해석, 변형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 어떻게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적 정체성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 되는 시점에 '한옥'역시 그러한 흐름 가운데 있으며, 건축물, 주거공간이라는 대상의 특성상 온전히 민간의 활동보다는 정부, 지자체의 정책과 의지에 영향을 받기에 그에 따른 정책적 변화가 필요했을 거라 여겨집니다.
실제로 현재 우리가 실제 거주하며 생활하는 곳으로 한옥이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옥으로 상징되는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한옥을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에 정책적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의 개발이 속도전이 아닌 지역 문화의 보존, 공존과 조화를 바라보며 변화하는 가운데 한옥에 대한 관심도 튼튼한 정책을 토양으로 민간의 관심이 꽃피우길 기대해 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서울한옥 1.0에 해당하는 '북촌가꾸기사업'부터 4.0 재창조까지 그 발자취를 살펴봅니다.
서울시 한옥 정책 네 번의 발자취
1976년 중앙고등학교 앞 전경, 『착실한 전진: 1974-1978(2)』(2017), 196쪽,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한옥 1.0 - 북촌가꾸기사업, 2001년
서울시의 한옥 관련 정책은 2001년 '북촌가꾸기사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북촌은 대표적인 한옥밀집 지역으로 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 됐죠. '서울한옥 1.0'에 해당하는, 서울시 한옥정책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촌가꾸기사업'은 서울시 유산이나 도시재생 같은 개념이 없던 시절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입니다. 1999년 9월, 급격하게 훼손되어 가는 북촌의 현실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지역 주민들은 서울시장과의 대화를 통해 북촌마을 현안 해결 및 보전대책 수립을 공식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한옥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북촌 가꾸기 시책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의사에 따라 한옥을 등록하면, 서울시가 수리비와 건축비용 지원 및 세금 감면 등의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주고,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는 정책을 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옥등록제'가 되었죠.
성북구 / ⓒ 월간한옥
서울한옥 2.0 - 서울한옥선언, 2008년
2008년에는 '서울한옥선언'으로 불리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서울한옥 진흥·육성시기'라고도 불립니다. 서울시는 북촌가꾸기를 시작으로 한옥주거지보전과 진흥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한옥정책 시행 초기부터 한옥등록제와 개보수 지원, 한옥매입 등 한옥의 멸실을 막기 위한 지원정책들이 시행되었지만, 중장기 적인 계획과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탓에 정책을 지속해서 수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지원정책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한옥밀집지역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결정하고 고시하였고, 서울시청 내에 한옥정책과라는 독립부서가 신설하였습니다. 한옥 2.0은 은평 한옥마을 조성 계획 등 한양도성 사대문 밖으로까지 한옥에 대한 시선을 확장하게 된 시기입니다.
한옥지원센터 / ⓒ 월간한옥
👨👩👦서울한옥 3.0 - 서울한옥자산선언, 2015년
2015년은 친환경 주거문화로서의 한옥보전시기인 '서울한옥자산선언'이 있었습니다. 한옥정책 시행 초기 8년간 1,200동의 한옥을 보전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2006년 22,000여 채에 달하던 서울 시내 한옥 수가 2014년 11,000여 채로 절반가량 감소했습니다.
서울 한옥자산선언은 한양도성 내부 일부 지역(경북궁서측, 인사동, 돈화문로, 운현궁 주변)에 한정되었던 한옥지원사업을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하고, 한옥보존 및 진흥 사업에 걸림돌이었던 한옥수선 인력의 부족을 해결하고 수선 상담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하기 위해 한옥지원센터를 자체 조직으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대목수를 공무원으로 받아들여 수선상담을 하고 간단한 수선까지 제공하여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우수한옥’을 선정하여 책자를 발간하는 등 서울한옥을 홍보하여 한옥의 보존과 진흥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서울한옥 4.0 심의기준 개정안 이미지 / 서울시 제공
서울한옥 4.0 - 재창조, 2023년
한옥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재해석과 변형, 조화를 통한 여러 형태의 '현대식 한옥'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대식 한옥은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전통식 한옥에 대한 기준을 적용하여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에 한옥비용지원의 심의규정이 개정되었고, 한옥 건축 양식의 최소 기준(필수항목)인 한식 목구조, 한식지붕틀, 한식지붕형태, 한식형 기와, 입면비례 총 5가지만 충족한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옥의 개념을 확장하고, 한옥건축지원의 문턱을 낮춰 한옥지원을 받아 다양한 한옥건축이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추가로 서을시는 앞으로 10년간 10개소의 한옥마을 조성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에 비해 한옥 정책 또한 발전하고 그로 인한 성과도 존재하며 민간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옥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고 있으며, 일부는 홍보 효과나 경제적 효용이라는 목적으로 빠르게 소비되어 없어지는 등 자본주의와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 속에 그 존재가치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과 전문가, 정부 기관 등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 정책적인 연구를 통해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며 새롭게 발전해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거주자가 머슴이 되는 현대 한옥살이
기와이기, 《단원 풍속도첩》, 김홍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옥은 꾸준한 관리가 매우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한옥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한옥에 실제 거주하며 생활하는 분들은 "손이 많이 간다."고 자주 표현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주거 한옥은 크기를 줄인 형태로 개량되기도 했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한옥의 형태는 대부분 양반의 것으로 과거에는 머슴을 두고 관리했던 것입니다. 머슴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한옥의 관리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마루의 틈새를 메우는 일이나 기와의 교체 등 부재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점검·보수하여 쾌적한 거주 환경과 건축물의 수명 연장을 도왔습니다.
허나 머슴의 개념이 없는 현재는 가주들이 관리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건축 시에는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등이 함께 집을 만들어 가지만, 건축주만이 거주자로서 살아가며 모든 상황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주자는 대부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유지관리를 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전문가의 도움과 다양한 정보 습득이 필요로 합니다.
한옥유지관리메뉴얼 표지
하여 작년 2월 서울한옥정책과에서는 유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옥거주자들을 위해 ‘한옥유지관리 메뉴얼’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옥유지관리 메뉴얼’은 2015년부터 ‘한옥출동 119’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1천여 건의 한옥 현장 점검 및 수선 상담, 한옥 수선사업 관련 자료, 다양한 한옥전문가의 자문 등을 토대로 한옥의 현재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부터 다양한 손상 유형과 그에 따른 조치 및 수선방법까지 한옥 유지관리에 대한 정보를 담았습니다.
서울한옥정책과 내부의 ‘서울 한옥 지원센터’에서는 한옥 거주자들이 보다 나은 한옥 살이를 할 수 있도록 '한옥출동119' 외에도 한옥 보전 3대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옥 출동 119와 한옥 소규모 수선 지원 서비스
2015년부터 생활밀착형 한옥 점검관〮리 서비스를 취지로 거주민과 함께 현장점검하며 수선, 유지관리, 지원 등을 컨설팅하고 한옥지원센터로 전화 또는 방문 시 한옥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옥 출동 119’ 서비스와 연계하여 한옥의 상담 후 한옥 보전 3대 지원 사업 중 하나인 ‘한옥 소규모 수선 지원 서비스’를 지원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규모 수선 지원 가능한 범위는 한식지붕 누수, 목구조 파손 등 구조 훼손에 대해 응급수선, 기와 흙 유실, 미장 탈락 등 구조 노후화에 대해 개선 수선, 기타 적정성 검토 후 한옥 구조와 관련하여 조치가 필요한 경우 지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리모델링 되지 않은 한옥 중에는 최근 안전규격에 미달하는 일명 ‘두꺼비집’이나 낙후된 전기배선을 사용 중인 곳이 있어 한옥 화재 피해 예방 및 보전을 위해 ‘노후전기 배선 교체’를 지원합니다.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한시적으로 신청 및 지원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부터는 상시 신청 받을 예정이며 노후 내선설비 교체, 단독경보감지기 설치, 접지 작업 등을 서울시가 직접 지원합니다.
흰개미의 결혼비행이 집중되는 봄철, 집단 출몰하는 한옥에 방제작업을 지원합니다. 지난 5월 말까지 신청할 수 있었던 ‘흰개미 방제작업 지원’은 습한 한옥에 발생하여 목재를 갉아 먹는 흰개미를 방제하기 위해 목재 약제 주입․도포, 토양 약제 처리 등을 지원합니다. 신청 기간이 지나 신청을 못 한 가구나 흰개미 가해 흔적만 발견되는 한옥에는 예방약제를 연중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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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한옥 활용법 - 전통혼례 지원
남산골 한옥마을 전통혼례 / 남산골한옥마을 유투브
과거 한옥은 주거의 용도뿐만이 아닌 행사의 용도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되는 행사는 결혼식이었습니다. 과거의 결혼식은 현재의 결혼식과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의 집으로 혼례를 치렀습니다. 화려한 예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는 마주 보고 큰절을 올리고, 잔에 술을 부어 함께 나누어 마시며 사람들에게 이루어졌음을 알렸습니다. 혼례를 치르고 신부의 집에서 며칠을 지낸 후에 신랑은 말을,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의 집에 도착해 어른들께 큰절을 올리고 새 식구가 되었음을 알리는 폐백을 드리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전통혼례는 일제강점기까지도 형태가 유지되어 왔지만 오늘날에는 절차가 복잡하다고 여겨져 많은 부분이 서양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시에 속해 있는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공예식장을 발굴하고 개성있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여 건강한 결혼식 문화를 조성하고자 ‘나만의 결혼식’을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공공 예식장은 기존에 운영하던 4개소를 포함하여 총 23개의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뤄진 결혼식의 수요가 증가하며 특별한 결혼식을 원하는 신혼부부들이 찾게 되었습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는 전통혼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남산골한옥마을 외에도 한옥에서 전통혼례를 지원하는 장소는 예향재, 한방진흥센터 등이 있습니다.
한옥 정책 20년, 그리고 현재
북촌한옥마을 / ⓒ 월간한옥
서울시의 한옥 관련 정책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내 한옥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서울시 내 한옥은 8,586동으로 파악되며 이중 등록한옥은 1,033동으로 전체의 12%입니다. 한옥 등록율은 2006년 1.58%로 시작해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이는 등록한옥의 증가와 함께 전체 한옥수량의 감소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서울시 내 한옥은 2006년 22,672동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앞선 통계 수치인 8,586동과 비교하면 현재는 절반 이상 감소한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장조례안 심사보고, 주택공간위원회, 2023.04.27)
이외에도 한옥과 관련된 여러 통계를 살펴보면 숙박시설 등 한옥 체험 공간으로 이용되는 한옥은 늘고 있으며, 대표적인 한옥밀집지역인 북촌의 거주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옥이 상업 시설로 이용되며 실 거주자는 점차 줄고 있는 것이죠.
오래된 전통한옥이 관리의 부족 등으로 낡고 훼손되어 철거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개량된 형태의 현대한옥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체 수는 줄어들고 있으며 상업적인 용도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한옥이 보전, 발전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문화'는 '생활'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것이기에 용도가 편형된다면 파생되는 문화라는 부산물 역시 단편적이며 소실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서울시의 한옥 지원 정책 또한 점차 그 기준이 완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대에 맞는 한옥의 형태를 수용하며 그에 맞는 기준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민간의 관심으로 한옥 문화가 보존, 발전하길 바랍니다.
월간한옥 뉴스레터 52호
서울한옥 4.0 재창조, 그게 뭔데❓
은평 한옥마을 백세청풍 / ⓒ 월간한옥
올해 초 서울시가 서울한옥 4.0 재창조 계획을 밝혔습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서울한옥 3.0'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물론 한옥 정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짐작하여 알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서울시의 한옥 관련 정책은 그 시작을 포함하여 네 번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확히 '4.0'이라는 버전을 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서울한옥 4.0은 "최근 다양한 현대한옥, 한옥을 재해석한 현대건축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 이용자의 편의, 취향 등이 반영된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한옥·한옥 디자인에 대한 접근 및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이번 정책의 배경과 방향성을 밝혔습니다.
한류를 비롯해 한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 해석, 변형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 어떻게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적 정체성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 되는 시점에 '한옥'역시 그러한 흐름 가운데 있으며, 건축물, 주거공간이라는 대상의 특성상 온전히 민간의 활동보다는 정부, 지자체의 정책과 의지에 영향을 받기에 그에 따른 정책적 변화가 필요했을 거라 여겨집니다.
실제로 현재 우리가 실제 거주하며 생활하는 곳으로 한옥이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옥으로 상징되는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한옥을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에 정책적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의 개발이 속도전이 아닌 지역 문화의 보존, 공존과 조화를 바라보며 변화하는 가운데 한옥에 대한 관심도 튼튼한 정책을 토양으로 민간의 관심이 꽃피우길 기대해 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서울한옥 1.0에 해당하는 '북촌가꾸기사업'부터 4.0 재창조까지 그 발자취를 살펴봅니다.
서울시 한옥 정책 네 번의 발자취
서울한옥 1.0 - 북촌가꾸기사업, 2001년
서울시의 한옥 관련 정책은 2001년 '북촌가꾸기사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북촌은 대표적인 한옥밀집 지역으로 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 됐죠. '서울한옥 1.0'에 해당하는, 서울시 한옥정책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촌가꾸기사업'은 서울시 유산이나 도시재생 같은 개념이 없던 시절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입니다. 1999년 9월, 급격하게 훼손되어 가는 북촌의 현실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지역 주민들은 서울시장과의 대화를 통해 북촌마을 현안 해결 및 보전대책 수립을 공식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한옥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북촌 가꾸기 시책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의사에 따라 한옥을 등록하면, 서울시가 수리비와 건축비용 지원 및 세금 감면 등의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주고,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는 정책을 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옥등록제'가 되었죠.
성북구 / ⓒ 월간한옥
서울한옥 2.0 - 서울한옥선언, 2008년
2008년에는 '서울한옥선언'으로 불리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서울한옥 진흥·육성시기'라고도 불립니다. 서울시는 북촌가꾸기를 시작으로 한옥주거지보전과 진흥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한옥정책 시행 초기부터 한옥등록제와 개보수 지원, 한옥매입 등 한옥의 멸실을 막기 위한 지원정책들이 시행되었지만, 중장기 적인 계획과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탓에 정책을 지속해서 수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지원정책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한옥밀집지역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결정하고 고시하였고, 서울시청 내에 한옥정책과라는 독립부서가 신설하였습니다. 한옥 2.0은 은평 한옥마을 조성 계획 등 한양도성 사대문 밖으로까지 한옥에 대한 시선을 확장하게 된 시기입니다.
한옥지원센터 / ⓒ 월간한옥
👨👩👦서울한옥 3.0 - 서울한옥자산선언, 2015년
2015년은 친환경 주거문화로서의 한옥보전시기인 '서울한옥자산선언'이 있었습니다. 한옥정책 시행 초기 8년간 1,200동의 한옥을 보전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2006년 22,000여 채에 달하던 서울 시내 한옥 수가 2014년 11,000여 채로 절반가량 감소했습니다.
서울 한옥자산선언은 한양도성 내부 일부 지역(경북궁서측, 인사동, 돈화문로, 운현궁 주변)에 한정되었던 한옥지원사업을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하고, 한옥보존 및 진흥 사업에 걸림돌이었던 한옥수선 인력의 부족을 해결하고 수선 상담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하기 위해 한옥지원센터를 자체 조직으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대목수를 공무원으로 받아들여 수선상담을 하고 간단한 수선까지 제공하여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우수한옥’을 선정하여 책자를 발간하는 등 서울한옥을 홍보하여 한옥의 보존과 진흥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서울한옥 4.0 심의기준 개정안 이미지 / 서울시 제공
서울한옥 4.0 - 재창조, 2023년
한옥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재해석과 변형, 조화를 통한 여러 형태의 '현대식 한옥'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대식 한옥은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전통식 한옥에 대한 기준을 적용하여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에 한옥비용지원의 심의규정이 개정되었고, 한옥 건축 양식의 최소 기준(필수항목)인 한식 목구조, 한식지붕틀, 한식지붕형태, 한식형 기와, 입면비례 총 5가지만 충족한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옥의 개념을 확장하고, 한옥건축지원의 문턱을 낮춰 한옥지원을 받아 다양한 한옥건축이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추가로 서을시는 앞으로 10년간 10개소의 한옥마을 조성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에 비해 한옥 정책 또한 발전하고 그로 인한 성과도 존재하며 민간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옥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고 있으며, 일부는 홍보 효과나 경제적 효용이라는 목적으로 빠르게 소비되어 없어지는 등 자본주의와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 속에 그 존재가치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과 전문가, 정부 기관 등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 정책적인 연구를 통해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며 새롭게 발전해 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거주자가 머슴이 되는 현대 한옥살이
기와이기, 《단원 풍속도첩》, 김홍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옥은 꾸준한 관리가 매우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한옥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한옥에 실제 거주하며 생활하는 분들은 "손이 많이 간다."고 자주 표현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주거 한옥은 크기를 줄인 형태로 개량되기도 했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한옥의 형태는 대부분 양반의 것으로 과거에는 머슴을 두고 관리했던 것입니다. 머슴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한옥의 관리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마루의 틈새를 메우는 일이나 기와의 교체 등 부재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점검·보수하여 쾌적한 거주 환경과 건축물의 수명 연장을 도왔습니다.
허나 머슴의 개념이 없는 현재는 가주들이 관리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건축 시에는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등이 함께 집을 만들어 가지만, 건축주만이 거주자로서 살아가며 모든 상황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주자는 대부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유지관리를 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전문가의 도움과 다양한 정보 습득이 필요로 합니다.
한옥유지관리메뉴얼 표지
하여 작년 2월 서울한옥정책과에서는 유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옥거주자들을 위해 ‘한옥유지관리 메뉴얼’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옥유지관리 메뉴얼’은 2015년부터 ‘한옥출동 119’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1천여 건의 한옥 현장 점검 및 수선 상담, 한옥 수선사업 관련 자료, 다양한 한옥전문가의 자문 등을 토대로 한옥의 현재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부터 다양한 손상 유형과 그에 따른 조치 및 수선방법까지 한옥 유지관리에 대한 정보를 담았습니다.
서울한옥정책과 내부의 ‘서울 한옥 지원센터’에서는 한옥 거주자들이 보다 나은 한옥 살이를 할 수 있도록 '한옥출동119' 외에도 한옥 보전 3대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옥 출동 119와 한옥 소규모 수선 지원 서비스
2015년부터 생활밀착형 한옥 점검관〮리 서비스를 취지로 거주민과 함께 현장점검하며 수선, 유지관리, 지원 등을 컨설팅하고 한옥지원센터로 전화 또는 방문 시 한옥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옥 출동 119’ 서비스와 연계하여 한옥의 상담 후 한옥 보전 3대 지원 사업 중 하나인 ‘한옥 소규모 수선 지원 서비스’를 지원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규모 수선 지원 가능한 범위는 한식지붕 누수, 목구조 파손 등 구조 훼손에 대해 응급수선, 기와 흙 유실, 미장 탈락 등 구조 노후화에 대해 개선 수선, 기타 적정성 검토 후 한옥 구조와 관련하여 조치가 필요한 경우 지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리모델링 되지 않은 한옥 중에는 최근 안전규격에 미달하는 일명 ‘두꺼비집’이나 낙후된 전기배선을 사용 중인 곳이 있어 한옥 화재 피해 예방 및 보전을 위해 ‘노후전기 배선 교체’를 지원합니다.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한시적으로 신청 및 지원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부터는 상시 신청 받을 예정이며 노후 내선설비 교체, 단독경보감지기 설치, 접지 작업 등을 서울시가 직접 지원합니다.
흰개미의 결혼비행이 집중되는 봄철, 집단 출몰하는 한옥에 방제작업을 지원합니다. 지난 5월 말까지 신청할 수 있었던 ‘흰개미 방제작업 지원’은 습한 한옥에 발생하여 목재를 갉아 먹는 흰개미를 방제하기 위해 목재 약제 주입․도포, 토양 약제 처리 등을 지원합니다. 신청 기간이 지나 신청을 못 한 가구나 흰개미 가해 흔적만 발견되는 한옥에는 예방약제를 연중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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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한옥 활용법 - 전통혼례 지원
남산골 한옥마을 전통혼례 / 남산골한옥마을 유투브
과거 한옥은 주거의 용도뿐만이 아닌 행사의 용도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되는 행사는 결혼식이었습니다. 과거의 결혼식은 현재의 결혼식과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의 집으로 혼례를 치렀습니다. 화려한 예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는 마주 보고 큰절을 올리고, 잔에 술을 부어 함께 나누어 마시며 사람들에게 이루어졌음을 알렸습니다. 혼례를 치르고 신부의 집에서 며칠을 지낸 후에 신랑은 말을,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의 집에 도착해 어른들께 큰절을 올리고 새 식구가 되었음을 알리는 폐백을 드리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전통혼례는 일제강점기까지도 형태가 유지되어 왔지만 오늘날에는 절차가 복잡하다고 여겨져 많은 부분이 서양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시에 속해 있는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공예식장을 발굴하고 개성있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여 건강한 결혼식 문화를 조성하고자 ‘나만의 결혼식’을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공공 예식장은 기존에 운영하던 4개소를 포함하여 총 23개의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뤄진 결혼식의 수요가 증가하며 특별한 결혼식을 원하는 신혼부부들이 찾게 되었습니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는 전통혼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남산골한옥마을 외에도 한옥에서 전통혼례를 지원하는 장소는 예향재, 한방진흥센터 등이 있습니다.
한옥 정책 20년, 그리고 현재
북촌한옥마을 / ⓒ 월간한옥
서울시의 한옥 관련 정책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내 한옥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서울시 내 한옥은 8,586동으로 파악되며 이중 등록한옥은 1,033동으로 전체의 12%입니다. 한옥 등록율은 2006년 1.58%로 시작해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이는 등록한옥의 증가와 함께 전체 한옥수량의 감소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서울시 내 한옥은 2006년 22,672동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앞선 통계 수치인 8,586동과 비교하면 현재는 절반 이상 감소한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장조례안 심사보고, 주택공간위원회, 2023.04.27)
이외에도 한옥과 관련된 여러 통계를 살펴보면 숙박시설 등 한옥 체험 공간으로 이용되는 한옥은 늘고 있으며, 대표적인 한옥밀집지역인 북촌의 거주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옥이 상업 시설로 이용되며 실 거주자는 점차 줄고 있는 것이죠.
오래된 전통한옥이 관리의 부족 등으로 낡고 훼손되어 철거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개량된 형태의 현대한옥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체 수는 줄어들고 있으며 상업적인 용도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한옥이 보전, 발전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문화'는 '생활'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것이기에 용도가 편형된다면 파생되는 문화라는 부산물 역시 단편적이며 소실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서울시의 한옥 지원 정책 또한 점차 그 기준이 완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대에 맞는 한옥의 형태를 수용하며 그에 맞는 기준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민간의 관심으로 한옥 문화가 보존, 발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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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Kyoungcheol Park
뉴스레터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경근 Gyungge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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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빈 Sungbi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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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하 Yoonha Song